중국 당나라 때 어떤 상인이 있었습니다. 상인은 여러 달 동안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장사를 하다가 연말을 맞이하여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상인은 그동안 장사가 매우 잘 되어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그는 부인에게 줄 선물을 사기 위해 시장을 이리저리 둘러보았습니다. 그런데 마침 "게송을 팝니다."라고 쓴 팻말을 놓고 한 노스님이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뜨였습니다. 평소 호기심이 많던 상인은 노스님에게로 가까이 다가가 여쭈었습니다.
"무슨 내용이기에 돈을 받고 게송을 팝니까?"
"이것은 세상에 둘도 없는 아주 귀하디 귀한 보배로운 게송입니다."라고 노스님이 대답했습니다.
"얼만데요?"
"황금 열 냥이 아니면 팔 수 없는 값진 게송이지요."라는 노스님의 대답에 상인은 어리둥절했습니다. 황금 열냥이라면 당시 굉장히 큰 액수였기 때문에 상인은 잠시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얼마나 대단한 게송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아내에게 값진 선물을 주고 싶기도 해서 그 게송을 사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황금 열 냥을 주고 받아본 족자에는 "앞으로 세 걸음 걸으며 생각하고, 뒤로 세 걸음 물러나서 생각한다. 성이 날 때는 잘 생각하여 노여움의 불을 끄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다."라는 말이 적혀 있었던 것입니다.
대단한 게송을 기대했던 상인은 매우 실망하며 노스님께 따졌습니다.
"아니 누구나 다 알 만한 이 몇 마디 말이 황금 열 냥 짜리란 말입니까?"
말도 안 됩니다. 스님, 사람을 앞에 두고 기만한 것이 아닙니까?"
하고 따지면서 거래를 도로 무르려고 하였습니다.
노스님은 상인이 화를 벌컥 내며 따지는데도 껄껄 웃으면서 "잘 기억해 두었다가 참을 수 없이 화가 날 때 이 게송을 큰 소리로 읽도록 하시오." 하고는 금세 사라져 버렸습니다.
상인은 황금 열 냥이 엄청나게 아까웠지만 어쩔 수 없이 족자를 말아 어깨에 메고 발길을 돌려 집으로 향했습니다. 상인이 집에 도착했을 때는 어느새 날이 저물어 캄캄한 밤이 되었습니다. 상인은 오랫 만에 집에 돌아와 아내를 만날 수 있다는 기쁨에 설레었습니다. 한 달음에 집에 들어가 큰 소리로 아내를 부르려고 하는데, 방문 앞에 어떤 남자의 신 한 켤레와 여자의 신 한 켤레가 나란히 놓여 있었습니다.
그것을 본 상인은 화가 머리 끝 까지 치밀어 올랐습니다. 자기가 없는 사이에 아내가 다른 남자와 정을 통하고 함께 잠이 든 것이라고 단정하였기 때문입니다. 상인은 화를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다리가 부들부들 떨릴 정도였습니다. 간통하는 두 남녀를 죽여서 복수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부엌으로 뛰어 들어 갔습니다. 부랴부랴 부엌에서 칼을 찾아 들고 나오는데, 갑자기 어깨에 멨던 족자가 툭 떨어져 그의 발에 걸렸습니다.
족자 때문에 넘어질 뻔했던 상인이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눈앞에 떨어진 족자를 보았습니다. 황금을 열 냥이나 주고 산 게송이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고, "참을 수 없이 화가 날 때 이 게송을 큰 소리로 읽도록 하시오,'라는 노 스님의 말씀이 뇌리에 스쳤습니다. 상인은 노스님 말씀대로 족자를 펼쳐서 게송을 소리 내어 읽었습니다.
"앞으로 세 걸음 걸으며 생각하고, 뒤로 세 걸음 물러나서 생각한다. 성이 날 때는 잘 생각하여 노여움의 불을 끄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다."
상인은 자신도 모르게 게송이 시키는 대로 몸을 움직였습니다. 앞으로 세 걸음, 뒤로 세 걸음... 그러는 사이 인기척을 느낀 부인이 방문을 열고 나왔습니다.
